한국일보

한평생 햄(HAM)을 통해 커뮤니티 서비스와 이웃사랑 실천 - 미주 한국일보6.25전쟁 당시 공산당의 누명을 쓰고 죽을 위기를 넘겼던 제이 한 재미한인아마추어무선협회 장은 도미해서도 40년간 한인사회의 불우이웃과 노인들을 섬기는 삶을 살았다고 유족측은 회고했다.제이 한 회장은 한평생 햄을 통한 커뮤니티 서비스로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했다.“아버님은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었습니다. 자신이 돈을 쓰면서 봉사하다보니 어머님의 지갑은 늘 비어있기가 십상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23일 95세의 나이에 별세한 재미한인아마추어 무선협회의 제이 한 전 초대회장의 장남 한승진씨는 “부친은 남을 돕는 것이 바로 자신의 생활이었기 때문에 근심 걱정없이 오래 장수하신 것 같다”고 회고했다.제이 한 회장은 아마추어 무선의 불모지였던 LA지역에 지난 1983년 재미한인아마추어무선협회(Korean American Radio Assocation)를 창설해 아마추어 무선인들의 저변을 확대하고 회원 및 커뮤니티 서비스를 위해 평생 헌신한 것으로 지인들은 평가하고 있다.제이 한(한국명 징) 회장은 지난 1926년 5월12일 부친 한주명씨와 모친 김귀례씨 사이에 외동아들로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한회장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총명했으며 초등학교를 나오자마자 수원으로 나가 막노동을 했다. 온 몸을 하얗게 뒤집어쓰는 밀가루 공장, 온 몸을 시커멓게 뒤집어쓰는 연탄공장에서 일하며, 밤에는 통신강좌 강의록을 공부했다.당시는 변변한 도서관도 없고, 책을 빌려줄 사람들도 없어 책을 사지 않고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쥐꼬리만 한 돈을 벌면서도 전액을 책을 사는데 써가며 많은 책을 읽었다. 그는 통신강좌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허가를 받았다. 학비를 낼 돈이 없고, 또 독학으로도 많은 학문을 연마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도중에 중퇴를 하게 되었다.철도국에 취직이 되어 19세에 철도운행관리일을 하면서 철도국 교환원으로 일하던 부인 연옥씨와 만나 그 당시로는 흔치않은 연애결혼을 했다. 한씨는 부인에게 한 마리의 소가 되어 살아가겠다고 구애를 했다. 소가 살아서는 충성스럽게 주인을 위해 일하고, 죽어서는 고기를 바치며, 가죽도, 심지어 꼬리나 발굽까지도 남김없이 바치는 그런 소같은 헌신적인 사랑을 바치겠다고 했다고 한다. 한회장의 장남 승진씨는 “결혼 당시 부친 집에는 발 들여 놓을 틈도 없이 많은 책들이 꽉 들어차 있었고 그 책들을 모두 섭렵한 시대의 지성인이 되어있었다”며 “어머니는 현재보다 아버지와의 미래를 꿈꾸었기 때문에 청혼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밝혔다.한회장은 일제 강점기에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는 애국자였다. 미국의 소리를 접하고 영어공부를 하게되면서 세계를 향한 갈망이 커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단파 광석라디오 제작이고, 스테이션을 찾아가면서 햄과의 인연이 싹트게 되었다. 일제말 하와이로부터 들려오는 이승만 박사의 애국의 소리를 들으며 자유대한의 독립을 꿈꾸면서 그렇게 햄은 시작되었다.한회장은 결혼후 경찰로 직업을 바꾸었으며 월급의 전부는 책을 사는데 들어가고 부인은 생활고에 허덕였다. 한회장은 6.25전쟁당시 9.28 서울 수복 후 형무소 교도관으로 전보되어 인천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수감되어 있던 북한의 거물급 공산당 수감자와 사상논쟁도 벌였고, 지식의 깊이를 다투기도 하다가 신문을 넣어주는 편의를 제공한 일이 있었다.이 일이 빌미가 되어 그는 순식간에 공산당의 누명을 쓰고 집에서 체포되어 반월지서에서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반월지서의 순경이 가택 수색하러 나와서 방대한 양의 책을 보고 그의 지식과 학식에 감탄해 1.4후퇴 당시 공산당 혐의로 수감중인 사람은 재판없이 처형하고 경찰은 피난가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지만 동료경찰의 배려로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전쟁후 주한 미8군에서 영어를 통역할 사람이 필요할 때라 영어가 유창했던 그가 통역관으로 발탁되어 한진이라는 가명으로 한국 속 미군에서 20여년간 근무했으며 한진그룹의 조중훈 회장과 미8군 부대장과의 면담 통역을 맡기도 했다. 그의 본명은 마음 편안할 ‘징’으로 보통 옥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희귀한 한자이다.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제이 한 회장은 본인이 하고 싶었던 햄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미국으로 1983년 3월 건너왔다. 미국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햄장비 파는 곳을 찾아가 재미아마추어무선사협회(www.karausa.net)를 설립하게 됐다. 아파트 관리, 밤청소, 리커스토어 매니저 등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처음 13명이 모여서 친교를 나누고, 그 가정들이 모여서 잔치를 열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풀어가고, 또 이웃을 넓히고, 후학을 키우면서 이민 사회의 길잡이가 되었다.지진 등 재난 발생시 휴대전화 기기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등 통신시설이 마비되는 경우 유일하게 작동하는 것이 햄이라 배워두면 유용하게 쓰인다. 그는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들과 햄을 모르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 기술을 가르치고 라이선스 자격증을 취득하게 도와주었다. 또한 햄 안테나를 세우는데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설치하게 도와주고, 근거리나 원거리 통신을 가리지 않고 교신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그가 설립한 재미아마추어 무선사 협회는 본보가 주최한 한국의 날 행사의 순조로운 진행을 돕기도 하고 1991년 태평양을 요트로 횡단한 강동석 군의 요트구입비부터 식량과 교신지원 등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특히 영어가 불편한 노인들을 관공서에 라이드해주면서 통역 등으로 그들의 귀가 되고 발이 되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남을 도우며 살았다. 은퇴후에는 꽃배달을 하면서 교회나 노인센터로 자신보다 나이어린 노인들을 라이드하는 일을 했고 교회에서 컴퓨터를 가르치고 생수의 강 선교교회 집사로 봉사하면서 주일 예배에 빠지는 적이 없었다.고 제이 한 회장의 유족으로 아들 승진, 딸 승자씨, 손자1 명, 손녀3 명이 있다. 장남 승진씨는 “부친이 100세 가까운 생애를 사는 동안 미국에서의 40년 가까운 삶을 도움이 필요한 이웃과 단체를 위해 봉사와 사랑의 실천이라는 큰 뜻을 펼친 것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제이 한 회장의 유명한 명언이 남아 아직도 햄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다.“아름다운 무지개 꿈 꾸시기 바랍니다.”73! (햄 용어로 안녕히, 고마워 라는 뜻).■아마추어 무선(Amateur Radio;HAM)은 직업이 아닌 취미 활동으로서 무선 통신을 즐기는 취미이다. 아마추어 무선은 햄(HAM)이라고도 하며, 아마추어 무선사도 햄(HAM)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전 세계 국가의 친구들과 사귈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고 시험을 통과하면 FCC(연방통신위원회)로부터 정식라이선스도 받게된다.